서핑계 '문익점'...셰이퍼 유경호

Share:

Listens: 0

TellMe

News & Politics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민초들의 의복 문제 해결에 크게 이바지한 문익점. 파도를 타는 서퍼이자 직접 서핑보드까지 제작하는 '셰이퍼' 유경호(40) 씨는 국내 서핑계에서 문익점과 같은 인물로 통한다.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서핑 선진국의 보드 제작 기술을 어렵사리 익혀 우리나라 서퍼에 적합한 보드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서핑보드는 셰이퍼 스타일에 따라 소재가 결정되고, 제작 공정도 셰이퍼에 따라 제각각이다. 외국 셰이퍼들이 자신의 보드 제작 노하우를 다른 이에게 전수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유경호 씨는 "내가 타는 보드를 내 스타일에 맞게 만들고 싶어, 손재주만 믿고 독학으로 셰이핑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가끔 외국에 나갈 때 현지 셰이퍼들에게 물어보거나, 유튜브를 통하는 게 유 씨가 보드 제작 기술을 습득하는 방안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정보는 전체 보드 제작 공정의 1/10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는 게 유 씨가 토로하는 지난날의 고충이다. 유 씨는 셰이퍼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뛰어난 서퍼다. 대한민국 서퍼 1세대 격인 유 씨는 이미 지난 94년부터 서핑을 접했고, 한때는 좋은 파도를 찾아 외국 해변을 오가며 서핑에만 푹 빠져 3년여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유 씨는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셰이핑을 할 수 있다"며 "파도를 많이 타보지 않은 사람이 보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친한 후배와 함께 운영하는 보드 제작 작업실을 강원도 양양에 둔 이유도 서핑과 셰이핑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유 씨 작업실에서는 보드 제작 과정이 100%로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보드 한 장을 만드는 데 보통 닷새에서 엿새 정도가 걸린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일감이 밀릴 때는 하루에 12시간 넘게 작업을 할 때도 많다. 파도가 밀려올 때 잠시 일손을 놓고 서핑을 즐기는 게 유 씨가 고된 작업에 따른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날리는 방법이다. 이따금씩 자신이 만든 보드를 갖고 있는 서퍼를 해변에서 만날 때면 유 씨는 기분이 묘해진다. "특히, 각종 서핑 대회에서 내가 만든 보드를 탄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공연히 미안한 마음까지 생긴다"고 유 씨는 말한다. 거꾸로, 유 씨의 보드로 대회 참가 선수가 좋은 성적을 올리거나, 일반 서퍼가 유 씨의 보드에 올라 멋들어지게 파도를 타는 모습을 볼 때는 유 씨의 기분도 한껏 좋아진다. 유 씨는 "지난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서핑을 해 왔다"며 "앞으로는 서핑보다 셰이핑에 더 미칠 계획"이라고 밝혔다.